*2014년 개봉된 ‘인터스텔라’는 우리나라에서 1천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크게 성공한 SF 영화이다. 지구환경의 황폐화로 생존에 위협을 느낀 인류가 새로 이주할 행성을 찾는 노력이 그려지는데, 웜홀, 블랙홀 등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비현실적으로 생각되는 이야기들을 지구 환경과 인류의 삶이 처한 여러 상황들과 함께 절묘하게 조화시키며 현실성을 증폭시킨 작품이다.
영화의 초반부를 압도하는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 밭과 엄청난 규모의 모래폭풍이 상당히 인상적인데, 이 장면들은 실제로 재현된 상황이다. 시각적 사실성을 중요시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옥수수밭을 재현하기 위해 캐나다 앨버타 주에서 30만 평이 넘는 옥수수밭을 6개월 동안이나 실제로 경작하고, 모래폭풍의 재현을 위해서는 특수 골판지를 갈아 만든 무독성 물질을 초대형 선풍기로 날리고 조명 효과로 암울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는 환경 파괴로 국가 체계는 붕괴되고, 인류에게 남은 3종의 식량 중, 밀과 오크라가 병해충과 환경 파괴로 모두 죽어버리면서, 옥수수가 마지막 식량으로 남은 미래 지구 상황이 설정되었다. 인류가 새 희망을 찾아 지구 밖에 다른 거주지를 건설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차치하고라도, 식물병리학자의 시각에서 과연 옥수수는 끝까지 살아 남아 인류에게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뇌리를 맴돌았다.
흑인 노예를 다룬 작품에서 노예들이 옥수수 밭에서 큰 칼로 옥수수 윗 부분의 수꽃을 잘라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이는 품질 좋은 옥수수의 생산을 위해 원하지 않는 꽃가루가 암꽃에 수정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인위적으로 수꽃을 제거하는 과정으로,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웅성불임(Tms) 옥수수가 개발되었는데, 웅성불임 옥수수는 꽃가루의 수정능력을 제거함으로써 잡종 교배를 막고 원하는 형질을 가진 꽃가루만을 암꽃에 수정할 수 있게 만든 획기적인 육종의 성과였다.
이후, 대부분의 미국 옥수수 재배지에서는 웅성불임 옥수수가 재배되었다. 1969년, 미국의 옥수수 밭 일부에서 Bipolaris maydis 라는 곰팡이에 의해 발생하는 옥수수깨씨무늬병이 발생하고 걷잡을 수 없이 피해가 확대되면서, 1970년 여름에 미국 남부 일부 지역의 옥수수 수확량은 100% 가까이 줄었고, 중부 지역에서도 수확량이 평균 20∼30% 감소했다. 당시 옥수수깨씨무늬병에 의한 피해는 전국적으로 15%의 수확 감소로 10억$의 손실을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병원균을 포함한 미생물은 대부분이 지독한 편식주의자다. 고등생물은 다양한 효소와 생리기능으로 여러 종류의 먹이를 소화할 수 있지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만을 가지는 미생물은, 먹는 것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먹이가 있는 경우 소화에 한계가 있지만, 동일한 먹이만 있다면 미생물 입장에서는 최적의 생존 조건이 된다. 이런 점에서, 단일 품종으로만 채워진 드넓은 옥수수 밭은 깨씨무늬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에게는 최상의 놀이터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식량 생산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온 식물 병의 대발생 사례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식물 병의 대발생에는 여러 원인들이 있을 수 있지만, 사회‧경제적으로 자연 생태계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끝없는 자본적 이득을 취하려는 욕구가 가장 큰 원인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 라는 희망적인 메시지와 함께 인류가 새로운 삶을 찾은 영화의 결말과는 달리, 옥수수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흙이 인류를 배신하고, 병해충이 인류를 공격하는 상황에서 인류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의 아들이 인류를 구하기 위해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농사를 지으면서 식물병리학을 배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듯, 인류는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흙과 병해충과 함께 공존하는 삶을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옥수수깨씨무늬병은 언제든지 인류의 마지막 식량인 옥수수를 거두어 갈지도 모른다.
*참고: 이 글은 농촌진흥청 대변인실 박진우 연구관님의 페이스북 글을 저자의 허락 하에 옮겨 온 것입니다. 이 글은 원래 국립농업과학원 김현란 과장님이 새전북신문에 기고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